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0년 재보궐선거 (문단 편집) == 상반기 ([[2010년]] [[7월 28일]]) == ||<-3> {{{#ffffff {{{+1 '''2010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 ||<-3>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JwZ8QZsk5f8)]}}} || ||<-3> '''{{{#white 선거광고 영상}}}''' || ||<-3> {{{#!wiki style="margin: -0px -11.7px -5px" {{{#!wiki style="margin-top: -6px; margin-bottom: -8px"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2 [[2009년]] [[10월 28일]]}}}}}}[[2009년 재보궐선거#s-3|2009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 →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2 [[2010년]] [[7월 28일]]}}}}}}'''2010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 →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2 [[2010년]] [[10월 27일]]}}}}}}[[2010년 재보궐선거#s-3|2010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 }}}}}} || ||<-3> {{{#ffffff '''선거 결과'''}}} || ||<-2> '''정당''' || {{{#!wiki style="margin: 0 -10px" '''국회의원'''}}} || ||<-2> [include(틀:한나라당)] || '''5석''' || ||<-2> [include(틀:민주당(2008년))] || 3석 || (투표율: 34.1%) 본래 상반기 선거는 4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해야하지만, 같은 해 총선이나 지방선거가 치러질 경우 연기되어 치러진다. [[2010년]]에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관계로 상반기 재보궐은 [[7월 28일]]에 치러졌다.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8석이 걸려있는 보궐선거였다. 이 선거는 무려 '''11년만에''' 여당이 승리한 재보궐선거다.[* 스코어 한나라당 5 : 민주당 3. 08년 선거 때는 민주 5, 한나라 1, 선진, 창조당이 각각 1석 씩이었다. 더구나 저 민주당 지역구 세 곳은 얼마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송영길-인천, 이광재-강원, 이시종-충북)들의 지역구였다. 다만 이광재 의원의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구는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야권의 '''공천잡음''' 및 늦어진 단일화[* 사실상 후달리던 은평을을 제외하면 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인물경쟁력에서의 열세 등이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창조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해 5.8%의 득표율을 올린 바 있던 [[문국현]]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2009년 10월 22일, 선관위의 지도를 받아 1%의 이자로 발행한 당사랑채권이 시중 금리(당시 5%)보다 낮다는 이유로 4% 차이만큼 당이 잠재적인 금전적인 이익을 얻은 죄를 물어, 당을 처벌할 수 없으니 자연인인 당 대표를 처벌하였다.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문국현 후보가 거물인 [[이재오]] 후보를 꺾었던 은평 을은 야권에서 B급 후보[* 전 총리 후보였던 장상 후보, 노무현 정권 마지막 청와대 대변인이어던 천호선 후보, 이상규 후보 등] 셋이 출마한데다 여론조사 문제로도 단일화가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었고 B급 후보들이 의레 그렇듯 단일화 되어도 인물이 되지 않아 압도적으로 패배하는 결말을 맞았다. 문국현 후보 빨이라지만 여하간 터줏대감이었던 [[창조한국당]]은 아예 존재감 조차 없었고 단일화 협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문국현 후보는 법원 판결에 따라 선거 유세조차 할 수 없었다. 한편 [[진보신당]]은 [[사회당(1998년)|사회당]]의 금민 후보와 연합하여 대역전극을 기대해 보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굳이 따지면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이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를 지원했던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광주광역시]] [[남구(광주)|남구]]에서는 [[민주당(2008년)|민주당]]이 양보하지 않았고 심지어 민주당이 색깔론까지 들고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후보가 44%로 석패함으로서 호남=민주당 공식이 무너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때문인지 민주당은 다음해 [[2011년 재보궐선거|4.27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에게 순천을 양보했고, [[19대 총선]]에서는 기어이 야권연대로 [[오병윤]]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강원도]]에선 3개 선거구 중 2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승리해, 강원도지사 선거 승리의 기세를 이어갔다. 이광재 지사의 지역구를 배우 [[최종원]] 후보로 사수한건 물론, 원주시 역시 민주당 승리로 강원 지역은 이광재 당시 지사의 2심 유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유리하게 치러졌다. 하지만 2008년 총선 결과와 비교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원주와 철원화천양구인제를 맞바꾼 셈이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텃밭이 졸지에 야권화되는 걸 보고 떨었고, 이광재 지사의 도지사직 박탈에도 불구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도 그 여세가 이어진다. [[자유선진당]]은 원래 자기 당 [[박상돈]] 후보의 지역구였고, 충남권인 천안에 유일하게 후보를 냈으나 2등도 아니고 3등으로 패배하면서 당의 존립기반이 위태해졌다. 이 결과로 지방선거 승리로 승승장구하던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뒤이은 전당대회에서도 3위로 뒤떨어지고 손학규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민간인 사찰, 4대강 이슈등의 굵직한 이슈들을 선점하지 못한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한지 얼마 채 되지 않아 정국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이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정보경찰'''로부터 주요 정치현안을 보고 받은 것이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410768|뒤늦게 밝혀졌다.]] 지역구 판세, 야당 후보 단일화 문제를 세밀히 분석한 보고서가 대통령의 손에 넘겨졌고 '조치 고려 사항'으로 여권 후보의 단일화 작업을 부추기며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려 한 게 포착되었다. 당연히 정보경찰의 업무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